마광수 자살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기억한다면, 마광수 교수에 대한 기억 있으실텐데요. 아타깝게도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네요. 66세의 아직 정정했던 마광수 교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고작 3시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마광수.. 그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얗게 새버린 머리에 뼈골만 악상해보이는 마광수 교수... 마광수 교수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며, 우리나라 문학계를 보수와 진보로 반토막 내게 만들었던 장본인입니다.




마광수 교수가 사망한 정확한 날짜와 시각은 오늘 9월 5일 낮 2시가 조금 안된 때였습니다.

마광수 교수의 자택이었던 동부이촌동 소재의 한 아파트에서 였는데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마광수 교수의 모습을 발견한 이는 어머니였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1985년 결혼을 했었지만(부인 사진은 아래..) 부인과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이혼하여 마광수 교수 슬하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즉 마광수 교수와 어머니만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요. 경찰은 계속해서 마광수 교수 죽음 이유를 조사하고 있으나 그의 "어머니는 마광수 교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자살했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마광수 교수 사진들을 보면 유독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오는데, 과거 일 때문에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네요.



마광수는 문학계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에 임용될 만큼 똑똑했던 사람이었는데요. 마광수 교수를 칭할 때는 "사회를 앞서간 사람" 또는 그 반대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유독 마른 얼굴은 더욱 삶이 어려웠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요.




마광수 하면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책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뒤를 이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또는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 등, 수많은 문제작 들을 선보이며 논란을 부축였는데요.

마광수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인 1992년도는 전두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하던 때이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훨씬 더 "성"이 개방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파격적인 "성"의 표현을 담고 있었던 "즐거운 사라" 때문에 마광수 교수는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되죠. 구체적으로 교수와 여제자와의 사랑이야기라는 파격적인 스토리와 함께 보수적인 문학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문학계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들 때문이었는데요.



위엄과 권위의 상징인 교수라는 사람이(마광수) 라며~ 대표적인 문학인들이 마광수 교수를 비판했고, 검찰은 이들을 옹호하며 급기야 마광수 교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됩니다.

마광수 교수 체포 이유는 너무나 뻔했는데요. "나쁜 정서적인 영향"과 그의 책이 지나치게 적나란 성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로인해 말못할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을 마광수 교수...

법원은 검찰과 보수적인 문학계의 편을 들어주며 마광수 교수에게 집행유예 2년에 징역 8개월을 선고하게 되는데요. 비록 옥살이는 하지 않았지만 교수직에서는 파면되고 말죠.



마광수 교수의 우울증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번 자살의 원인은 과거 출간한 책들로 인한 겪어야만했던 경험들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고 하는게 맞을 듯 합니다.




마광수 모교로 알려진 연세대학교는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마광수 교수의 논문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는데, 이때 마광수 교수는 우울증을 겪기 시작하면서 병원에 급기야 입원하기 시작합니다. 건강 때문에 휴직과 복직을 계속해야만 했던 마광수..




과연 마광수 교수가 체포될만큼 책이 선정적이었을까?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던 것은 아닐까?

아직도 극명하게 반대와 찬성표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마광수는 교수라는 신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정통 소설가가 아닌 아웃사이더 문학인이었기 때문인데요.



어쨌든 마광수 교수는 비록 여러단체로 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반대로 진보를 찬성하는 학생들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한다"는 쪽의 문학인들의 시위로 인해 교수 자리에 다시 앉게 됩니다.

그것도 마광수 교수가 졸업한 "연세대학교"로 말이지요.




당시 일을 겪은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마광수 교수에게는 잊지 못할 사건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본인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그때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또한 그렇게 박해 받을 일을 하진 않았다고 말을 합니다. 마광수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감춰진 성.. 문화를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마광수 교수 책 "즐거운 사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던 사람들의 마광수 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아니 오히려 정부가 부축인 꼴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은 무수히 팔려나갔고 오히려 지금까지도 마광수 교수하면 떠올리는 책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마광수 교수가 펴낸 에세이 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또다른 인기를 얻으며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마광수 교수 집>


안타깝게도 2017년 9월 5일 오늘 마광수 교수는 자택에서 목숨을 끊은채 발견되었습니다.

한편 마광수 자택에서는 유산 상속에 관한 내용을 담은 유언장이 발견되었는데요. 이미, 유언장 작성시기가 작년이었던 걸로 짐작컨데, 이미 죽음을 결심한 것이 작년부터가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상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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