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박 사건


바네사 메이 처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인간극장에 소개되었죠. 유진박은 과거 매니저와 동거 2년째라며 근황이 알려졌는데요. 


<유진박 양극성장애>


유진박은 비운의 음악가입니다. 유진박을 십년동안이나 감금과 폭행, 과다 약물복용까지 시키면서 무리한 스케줄로 노동을 시켰던 유진박 소속사 FOX엔터테인먼트 ...

그러나 유진박이 이 소속사에 계약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바로 유진박 어머니.




유진박 아버지는 2006년 사망, 유진박 어머니는 2015년 사망...


유진박 성장과정과 어머니에 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금 폭행을 주도했던 소속사보다는 유진박 어머니가 더 비난을 받았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관련 일화들이 소개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유진박 어머니는 소속사와 유진박과의 계약 성사 금으로 1억 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진박을 홀로 남겨둔채 본인은 미국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유진박 어머니는 이 계약전까지는 서울 이화여대 후문에서 라이브 카페를 직접 운영했다고 하는데요. 방송에서 보시다시피 유진박은 한국말이 굉장히 서툴죠. 유진박 어머니는 이와 반대로 영어를 잘 못하고... 모자지간인데도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결국 유진박은 유진박 어머니가 그져 시키면 시키는데로 연주를 해야할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지나간 2009년 유진박 어머니 인터뷰,



바로 이분이 유진박 어머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며 의심했지만 유진박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고, 계약금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던..



유진박 감금 폭행을 일삼았던 소속사 대표는 유진박 어머니가 계약금을 받았으나, 미국으로 출국한 유진박을 여러번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았고 이로인해 계약된 행사를 못해 화가 났다며 계약위반을 문제 삼아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해 놀란 유진박 어머니가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고합니다.




어머니의 케어를 못받은 유진박은 이년이 넘는 동안 오직 소속사를 위해서 무리한 스케줄에 끌려다니며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유진박의 진실"이라는 프로그램 인터뷰 당시, 유진박 어머니는 아들 유진박의 걱정보다는 돈에 대한 걱정 뿐이었죠.


유진박 어머니는 "유진이의 조울증을 알고도 계약을 해줘서 좋은 분들인 줄 알았다"

"그 사람들이 유진이를 해칠까봐 손도 못 쓰고 3년 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자식을 보호해야할 어머니가 오직 돈 돈 돈에 대한 걱정 뿐이라니요..



유진박은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시절... 사람들로 부터 줄리어드의 존레논이라 불릴만큼 천재적이었답니다. 사건 이후, 유진박은 줄리어드 음대를 다시 박문하면서 또 다른 꿈은 전자 바이올린을 매일 연주하는 거라고 하였었는데요.


<유진박 프로필>


한때 유진박이 감금 폭행 등을 당했던 전 소속사, 그리고 새로 계약한 소속사 대표가 같은 사람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요. 새 소속사에 계약한 사람도 유진박 어머니였습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부산 곱창집에서도 공연을....



유진박 어머니는 유진박 행사에서 벌어들인 모든 돈에 대한 관리를 했는데요. 유진박이 한국어에 서툴다는 이유로 성인이 된 아들 유진박을 대신에 그 어머니가 계약했었습니다.


즉, 유진박의 평생 인간으로써의 자유, 그리고 그 자식의 모든 수입까지 가져간 사람..



"계약서에 직접 사인했나요? 유진박 "아니오"



늘 유진박과 동행했던 어머니,




유진박의 공연장은 어디? 바로 경로당 연주... 동그라미 쳐진 인물이 유진박 어머니



유진박은 정말 뛰어난 연주 실력에도 불구하고 조울증, 즉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지구이벤트에 근무한 한 직원은 유진박과의 일화를 소개했었습니다.



"저희 교수님과 연주를 하고 유진박와 함께 백스테이지로 오자마자 그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엄마에게 아이스크림 사먹게 500원만 주라고 했답니다. 나이는 온전한 어린인데 500원을 용돈을 꿔갈 정도로 유진박이 버는 돈에 대한 권리가 없었고..."



<유진박 증언>


유진박의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다기고 있는 한 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유진박 어머니가 유진박을  어릴때부터 연습이 끝나지 않으면 방에 감금해 놓고 물만 주고 그랬답니다.



게다가 유진박 매니저가 깡패출신이어서 나이트가지 데리고 다니는 것도 유진박 어머니가 알았을거라고 하면서.. 유진박이 뜨려면 어쩔수 없다며 감금 폭행했던 매니저의 행동들도 모른척 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유진박 소속사 관련 또 다른 증언>



유진박 나이 올해 41세(1975년생)



유진박은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출생지가 미국 뉴욕이었습니다.

학력은 줄리어드 음대 출신으로 1996년 12월 "열린음악회"로 데뷔

유진박 앨범으로는 The Bridge


<유진박 이력>


미국에서 출생한 유진박은 태어난지 3년째인 3세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때에는 전액 장학금으로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하는 정말 천재적인 음악가죠.

10세 때 유진박은 협연으로 공연을 시작했고 13세때에 이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해졌는데요. 


<유진박 자폐증>


이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삼겹살 집이나 경로당 잔치에 불러다니며 공연을 했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유진박을 감금하며 폭행, 과다 약물복용까지 시켰던 소속사의 매니저가 모 여가수까지 성폭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네티즌들과 팬들은 충격을 받았었는데요.



유진박은 그 매니저가 여관 등에서 생활하며, 짜장면이나 볶음밥같은 중국음식으로 식사를 했으며 피가 날정도로 때렸다고, 거기에 생명과도 같았던 바이올린까지 주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유진박을 폭행했던 전 매니저는 징역1년을 선고 받았었고, 네티즌들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에 대한 서명운동까지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유진박은 정신연령이 10세 아이 수준이라고 하는데, 우울증, 조울증 자폐증상까지 유진박을 제데로 사회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이런 병들로 인해, 유진박 재산 등을 관리해줄 후견인으로 지정해달라고 서류를 제출한 유진박의 이모...




유진박 이모는 2016년 6월 경 유진박이 그동안 앓고 있는 병들로 인해, 사무를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없고, 또한 지속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하는 만큼 자신과 유진박 고모를 함께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해달라고 한겁니다.



법원에서는 유진박 고모라는 분을 직접 만나 조사를 해본 결과, 건강등을 고려 유진박 고모에 대해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또 앞으로 활동을 하게 될 유진박 재산에 대해서도 친인척간의 갈등의 요지가 있는 만큼 등을 감안 유진박 이모가 재출한 "성년후견인" 지정에 대해, 이모와 고모가 아닌 모 복지재단으로 선정을 했답니다.




그런데, 유진박 이모가 이같은 법원의 결정에 반박해서 유진박의 성년후견인 신청을 취소한다는 서류를 제출했다는 소식인데요.



참 안타깝네요. 유진박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면서 실질적으로 자신과 재산을 관리해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법원의 결정마져도 무산되는 현실을 맞이한 건데요.


유진박 이모는 유진박 재산을 관리하고자 한 것 같네요.






김완선 류태준 불타는 청춘?


한국의 마돈나, 가수 김완선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미모와 몸매는 여전,~ 김완선 나이는 49세(2017년 기준), 1969년 5월 16일 생입니다. 지난주 불타는 청춘에선 김완선 류태준 커플의 미묘한 섬씽~을 느꼈었는데, 그로인해 핫 피워드로도 올랐었죠.



#가수 김완선 데뷔

김완선은 그녀의 나이 17살때인 1986년 1집인 "오늘밤"을 발표합니다.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가 가수 인순이의 매니져 였으며, 1985년도에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백댄서로 연예게에 데뷔하게 되는데요. 당시 김완선의 미모는 섹시했고 유연한 춤동작 등, 인순이 보다 더 눈에 띄는 편이었죠. 김완선의 키는 164cm/ 몸무게 45kg





이후, 가수활동을 시작한 김완선, 그러나 춤은 잘 췄지만 노래실력은 그닥,~ 추후 가수 전인권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지요. 불타는 청춘에 출연중인 강수지, 양수경 등도 90년 김완선과 인기가 많았던 동료 가수들..

하지만 김완선이 당시엔 탑이었는데요.




<김완선 비키니 화보촬영>


#김완선 인순이

인순이를 통해서 연예계 데뷔를 했지만, 인순이의 프로듀서가 김완선을 택함으로써 서로 좋지 않은 관계일 수밖에 없을 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순이는 김완선에 대해 최고 인기를 가질만한 재능이 있는 친구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김완선 은퇴 선언~

5집 이후, 1992년 6집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김완선은 자신이 고정 패널로 활동하던 특종 tv연예를 마지막으로 연예계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뒤엔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의 조정이 있었죠.~ 김완선 이모 한백희는 김완선의 부모로 부터 진 빚이 있는 상태였고, 그 빚을 갚겠다고 동의를 받아 한국을 떠나 동아시아 진출을 꿈 꿉니다. 하지만 한국의 김완선 팬들에게는 은퇴~라는 거짓말을 한 셈이 되죠.







2006년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가 사망한 후,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김완선은 과거 힘들었던 때를 회상하며 이모 한백희와의 관계에 대해 털어놓게 됍니다.

김완선은 중학교를 그만둬야했고 이후 연예계 데뷔 준비를 하느라 삼년동안이나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했었는데, 이후 4년간이나 계속되었으니 약 7년동안 서울 도봉구 방학동이란 곳에서 트레이닝을 받아야했답니다.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는 옷 부터, 춤 안무 등 모든 것을 담당했으며,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는 고립된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김완선 과거 사진>


게다가, 김완선이 17살에 데뷔 이후, 한백희로부터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폭로했는데요.

그로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와 1998년 결별하게 됩니다.

김완선이 벌어들였던 돈들은 모두 한백희의 남편 사업 자금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추측하네요.

한백희는 몸이 자주 아파, 응급실을 자주 가게 되었으며 결별 후에도 김완선에게 연락을 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 사망하게 되죠.





#김완선 하와이로 출국

이후 김완선은 역시 연예계와는 이별을 하고 하와이로 출국해서 어학연수를 받았으며 하와이 대학교에서 디지털아트학과를 졸업했는데요. 2015년부터 "불타는 청춘에 출연 중인데, 작년에는 SBS 연예대상에서 김광규와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완선 정주영 루머


확인되지 않은 루머인듯 포탈이나 SNS에 공유된 글들이고~ "김완선이 정주영의 애를 낳았다" "김완선 이혼" 등등의 찌라시성 글들..~


김완성은 49살의 나이까지도 한번도 결혼을 한적이 없으니, 이혼도 한적이 없겠죠?


<불타는 청준 김완선 류태준>


<불타는 청춘 콘서트 김완선 류태준 키스신>


한편 지난주 김완선 류태준의 불타는 청춘에서는 류태준의 끼가 한껏 발산되며 출연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는데요..~ 이날 류태준이 김완선에게 선울 내밀었고, 춤을 추는 장면이 그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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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리틀은 미국 태생의 뮤지컬 배우 & 가수


브래드 리틀의 신부가 될 사람은 누구? 브래드 리틀은 2017년 4월 9일, 한국인 신부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5년전 브래드 리틀이 "오페라의 유령" 탄생 25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을 내한할 당시 만난 것으로, 신부의 직업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브래드 리틀이 공연을 앞두고 지인으로부터 신부를 소개 받았으며 자신의 메이크업을 했줬고 호감을 갖고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브래드 리틀과 한국인 신부는 4년동안 교제를 해왔고 결혼과 동시에 신혼집도 서울에 마련할 것으로 보이네요. 

이미 브래드 리틀의 한국과 한국인 사랑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는데요. 잠시 브래드 리틀의 프로필을 살펴봅니다.




#브래드 리틀 프로필

나이는 1964년생으로 올해 53살, 미국 태생으로 앨범을 낸 전력이 있는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입니다.

브래드 리틀은 오페라의 유령과 지킬앤하이트 주인공으로 유명한데요. 오페라의 유령인 팬텀 역을 약 2000여회 이상 연기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단 네명의 배우 중 한명입니다.



브래드 리틀은 1988년 뮤지컬 Anything Goes의 빌리 크로커 역으로 데뷔 했습니다.

2001년 베리모어 어워드와 필리 어워드에서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수상했으며,

앨범 : Brad Little Unmasked, Live in Korea

그밖에, 브래드 리틀은 2010년 제 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홍보대사로 내한한 적이 있습니다.



#브래드 리틀 한국인 신부와 결혼하다?

브래드 리틀과 신부는 웨딩드레스도 한복을 준비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인 목은정이 디자인한 예식용 한복을 입게 될꺼라 하네요. 목은정 한복 디자이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 받을 만큼 아름다운 한복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2년, 브래드 리틀이 지금의 아내를 만났던 계기가 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한국의 내한 공연 때 국내에 들어왔을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내한 공연때의 한국 관객의 뜨거운 반응 및 관람 태도 등을 회자하며, 브래드 리틀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며,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나려고 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나라들에서 같은 공연들을 해왔지만, 한국에서의 커튼콜 반응이 최고"라고 하면서 엄지척!을 했던 브래드 리틀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무대에 섰는데, "2005년도엔 신기하다는 반응이 있었다면, 2012년에는 마치 배우와 관객이 하나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브래드 리틀은 다른 배우들을 이끌며 한국의 이곳 저곳을 소개할 만큼 한국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죠. 평소 모습은 밝고 유쾌한데, 연기 무대에 올라가면 완전 돌변한답니다.



한편,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3" 일명 너목들"에서 브래드 리틀이 출연한 적이 있죠. 중국뮤지컬 퀸 홍보영과 브래드 리틀이 콜라보로 노래를 부른건데, 정말 소름돋는 장면으로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브래드 리틀은 한국 관객들을 위해서 공연이 없을때는 휴식을 취하며, 팬들이 건네 준 인삼 음료수도 마신다며, 한국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브래드 리틀의 한국 사랑과 함께, 한국인 신부와의 결혼, 어쩌면 예견된 일일 수도 있을 듯 하네요. 그 인연이 부러운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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